
휘발의 순간, 이장욱의 시를 읽고 든 지극히 개인적인 몇 가지 생각과 기억
당신과 나는 온갖 소란 앞에서 무기력하다. 그 소란의 근원이 개인의 사소한 심경의 부침이든, 대의를 향해 모인 인파의 함성이든 피로의 무게감은 동일하다. 피로는 좀체 내성이 생기지 않고, 종종 히스테리를 일으킨다. 어쩌면 세상의 모든 소란의 근원이 바로 자신임을 깨닫게 되고, 영영 입을 닫게 될지도 모른다. 침묵은 주체적인 입의 의지가 아니라 눈(目)의 실종이다. 뒤를 돌아보면 사라지고 없는 발자국, 어깨 없는 것들의 부둥켜 안음, 물 밖으로 나왔다가 다시 되돌아간 고래의 화석, 정오의 희망곡.
오전 열한 시에 나는 소리들을 흡수하였다./오전 열한 시에 나는 가능한 한 시끄러웠다./창문을 열고 수많은 목소리가 되었다./나는 음속으로 변형되었다./네 안에 들어가서/베 내리는 어머니의/썩어가는 몸을 흘러갔다./나는 소문이 흩어지는/무한한 형태가 되었다./육식 동물의/더러운 식욕이 되었다./혈관 속을 지나가는 피와 피의/현란한 각도,/아이들이 자라는 속도,/우유가 상해가는 소리,/나는 무성 영화 속의 주인공이/가장 크게 벌린 입이 되었다./오전 열한 시에 나는 귀를 막았다./오전 열한 시에 나는 눈을 닫았다./나는 완벽하게 침묵하였다. <소음들>전문/정오의 희망곡
비평가 이광호는 이장욱의 시편들에 대한 해설글의 초반부에 '만약 한 편의 서정시로부터 자명하고도 따뜻한 전언을 듣고 싶어 한다면, 당신은 이장욱의 시집을 읽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한국 시의 모더니티의 한 극한에서 서정성 자체를 낯설게 하는 첨예한 시적 감각을 만나려 한다면, 이장욱을 읽는 것은 강렬한 경험이 될 수 있다'고 썼다. 이장욱의 세련되고도 언뜻 낯선듯 보이는 시적 감각을 강조하고자 서정시를 '자명하고도 따듯한 전언'이라고 다소 폭력적으로 구획지어버린 면이 없지는 않은 것 같지만 그래도 나는 선뜻 그의 말에 동조할 수가 없다. 물론, 기형도의 사각의 철제 서류함같은 딱딱하고 찬 느낌은 아니더라도, 이장욱의 시에서 보여지는 시어는 넘치거나 수사적이지는 않다. 하지만, 서정이 쓰는 주체의 무엇이 아니라, 독자의 마음의 파동을 염두해둔 말이라고 하면, 이장욱의 시는 지극히 서정적이다라고 말하고 싶다. 나는 그의 시에서 청교도적인 냄새를 맡는다. 시인이 검박하고, 숭고한 삶을 꿈꾼다는 것이 아니라, 모든 소란이 가지쳐진 겨울 한 복판의 풍경 같은 것, 그러니까 다시 말해 히스테리같은 것. 아무것도 필요없고, 아무것도 상관없고, 당신도 없고 나도 없는, 그런 공동(公同 空洞)의 세계에 대한 엷은 열망같은 것.
우리는 우호적이다./분별이 없었다./누구나 종말을 향해 나아갔다./당신은 사랑을 잃고/나는 줄넘기를 했다./내 영혼의 최저 고도에서/넘실거리는 음악,/음악은 정오의 희망곡,/우리는 언제나/정기적으로 흘러갔다./누군가 지상의 마지막 시간을 보낼 때/냉소적인 자들은 세상을 움직였다./거리에는 키스 신이 그려진/극장 간판이 걸려있고/가을은 순조롭게 깊어갔다./나는 사랑을 잃고/당신은 줄넘기를 하고/음악은 정오의 희망곡,/냉소적인 자들을 위해 우리는/최후까지/정오희 허공을 날아다녔다. <정오의 희망곡>전문/정오의 희망곡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로 시끄러웠던 해가 있었다. 유모차부대, 교복부대, 하이힐부대 등등시민들의 자발적인 집회가 무슨무슨 부대로 불리며 연일 일간지 일면에 실렸다. 이유가 뭐냐, 사주하는 배경이 있지 않겠느냐, 시민들의 권리다, 아니다, 누군가는 잡혀가서 벌금을 물고,누군가는 뜬금없이 혁명가가 되었다. 나는 그 소란의 한복판에서 연애를 했고, 위정자의 탄핵과, 사랑을 동시에 속삭였다. 바깥이나 안이나 시끄러웠고, 정신이 없었다. 그런 날들 중 하루였을 것이다. 도시를 무법자처럼 관통하던 차량들이 모두 통제되어, 팔차선의 차도가 거대한 인도로 변했다. 신호등은 무의미했으며, 종말을 맞은 사람들처럼 사람들은 팔짝팔짝 뛰어다녔다. 늘 빼곡한 차량으로 정체였던 광화문에서 신촌방향의 고가도로는 인파를 피해 사람들을 구경하는 사람들의 무지개다리가 되었다. 나는 그 순간, 사람들의 눈에서 희열을 보았다. 대의를 함께 한다는 명분에서 비롯된 희열이 아닌, 거대한 공동과 적막에서 비롯되는 쾌감같은 것. 나와 애인은 인파를 피해 허름한 중국집에 들어가 짜장면과 군만두를 시켰고, 그것을 오래도록 씹었다.
당신이 입을 벌리는 순간/생일에 대한 이야기가 솟아난다/그다음엔 언제나 불안에 대한 이야기/반드시 그 순서로/당신은 말한다//당신은 사차선 도로를 건너가는 개에 대해/싸이즈가 맞지 않는 외투에 대해/카드놀이의 불운에 대해/조금씩 넘친다//골목 모퉁이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불쑥/춤을 추며 우리 앞에 나타나듯/당신은 말하는 법이니까//뒤꿈치를 들고 걷다가도/개를 향해 중얼거리다가도/생일 다음에는 불안,/드디어 당신은 기우뚱한 느낌이 든다/만원버스 안에서 빽!/소리를 지르고 싶어진다//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당신에게 묻는다/개들은 평생 무엇을 기다리는 겁니까?/대체 춤이란/몸의 어디서 탄생하는 것일까요?//당신은 곰곰 생각하고 생각한 후 간신히/생일 다음에 오는 불안에 대해/긴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신이 말하는 순서>전문/생년월일
사람들이 절기를 만들고 무슨무슨 때라 명명지었던 것은 그것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생각한다. 대설은 겨울을 견디기 위해서고 경칩은 아직 봄이 아닌 겨울을 견디기 위해서다. 봄이 왔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봄은 생명이 만발할 때이고, 얼었던 땅이 녹는 때이기도 하지만, 다시 지난한 노동의 시작을 알리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농경사회에서 쫒겨나 빽빽하고 날카로운 세계에서 밥을 벌고 있지만 오랫동안 각인된 몸의 기억은 저 오랜 고통을 견디는 방법을 잊지 않고 있다. 돌은 남은 생을 견디기 위해서이고, 환갑은 여전히 남은 생을 견디기 위한 위로임을 나는 서서히 알아가고 있다. 부끄러운 고백이다.
이장욱의 시는 환각제다. 그의 시를 읽고 있노라면, 손도, 귀도, 발도, 입도 사라지고 달랑 몸통만 남은 듯 가뿐해진다. 기우뚱, 늘상 기우뚱 왼쪽 혹은 오른쪽으로 기울어져 있는 몸이 그제야 비로소 중심을 잡은 듯 상쾌해지는 것이다. 당신도 사라지고, 나도 사라지고, 부박한 자취방의 살림살이도 모두 사라지고, 불필요한 것, 필요하다고 여겼던 것, 혹은 어쩌면 반드시 필요할지도 모른 것마저 사라지고, 나는 어느새 텅 빈 숲 속 빈 터에 몸통만 남은 채로 한없이 적막해지는 것이다. /by 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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