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an ray
핏덩어리 시계
김혜순
내 가슴속에는 일생을 한번도
쉬지 않고 뚝딱거리는 시계가 있다
피를 먹고 피를 싸는
시계가 있고, 그 시계에서 가지를 뻗은
붉은 줄기가 전신에 퍼져 있다
저 첨탑 위의 시멘트 시계를 둘러싼
줄기만 남은 겨울 담쟁이처럼
나는 너의 시계를 한번도
울려보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도
내 핏덩어리 시계를 건드리지 않았다
참혹한 시계에도 생각이 있을까
백년은 짧고 하루는 길다고 누가
나에게 가르쳐준 걸까
태양 시계를 쏘아보다 기절한 적도 있지만
바닷속으로 시계를 품은
내 몸통을 던져버린 적도 있지만
어떤 충격도 어떤 사랑도
이 시계를 멈추진 못했다
각기 출발한 시각이 다르므로
각기 가리키는 시각도 다른 우리 식구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묵묵히 시계에 밥을 먹이고 있다
우리 중 누구도 시계를 풀어
식탁 위에 놓지 않았다, 아직
아아, 안간힘 다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너의 귀에 대고 말해본다
네 시계까지 들리라고, 네 시계를 울리라고
큰 소리로 말해본다
그러나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오후 세시의
뚝딱거리는 말, 정말일까?
우리는 우리의 시계까지 들어가본 적이 없다
시계 밖으로 일진 광풍이 일자
겨울 담쟁이 붉은 줄기들이
우수수 몸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내 눈에 눈물 고인다
잠시만이라도 내 시계 바늘을 멈추어볼 수 있니?
이 바늘 없는 시계를 네 품에 안을 수 있니?
네 가슴속에 귀를 대보면
핏덩어리 시계 저 혼자 쿵쿵 뛰어가는 소리
시간 맞춰 잘도 울린다
김혜순
내 가슴속에는 일생을 한번도
쉬지 않고 뚝딱거리는 시계가 있다
피를 먹고 피를 싸는
시계가 있고, 그 시계에서 가지를 뻗은
붉은 줄기가 전신에 퍼져 있다
저 첨탑 위의 시멘트 시계를 둘러싼
줄기만 남은 겨울 담쟁이처럼
나는 너의 시계를 한번도
울려보지 못했다 그리고 누구도
내 핏덩어리 시계를 건드리지 않았다
참혹한 시계에도 생각이 있을까
백년은 짧고 하루는 길다고 누가
나에게 가르쳐준 걸까
태양 시계를 쏘아보다 기절한 적도 있지만
바닷속으로 시계를 품은
내 몸통을 던져버린 적도 있지만
어떤 충격도 어떤 사랑도
이 시계를 멈추진 못했다
각기 출발한 시각이 다르므로
각기 가리키는 시각도 다른 우리 식구 셋이
식탁에 둘러앉아 묵묵히 시계에 밥을 먹이고 있다
우리 중 누구도 시계를 풀어
식탁 위에 놓지 않았다, 아직
아아, 안간힘 다해 나는 너를
사랑한다고 너의 귀에 대고 말해본다
네 시계까지 들리라고, 네 시계를 울리라고
큰 소리로 말해본다
그러나 내가 너를 사랑한다는 말
네가 나를 사랑한다는 오후 세시의
뚝딱거리는 말, 정말일까?
우리는 우리의 시계까지 들어가본 적이 없다
시계 밖으로 일진 광풍이 일자
겨울 담쟁이 붉은 줄기들이
우수수 몸 속에서 바람에 흔들리고
내 눈에 눈물 고인다
잠시만이라도 내 시계 바늘을 멈추어볼 수 있니?
이 바늘 없는 시계를 네 품에 안을 수 있니?
네 가슴속에 귀를 대보면
핏덩어리 시계 저 혼자 쿵쿵 뛰어가는 소리
시간 맞춰 잘도 울린다

모래내 버스정류장에서
덧, 내게도 몇 개의 시계가 있었다. 너와 내가 만나 사랑이라는 것을, 혹은 사랑 비슷한 것을 해보고자 노력했던 그 때(나는 한 때 그 '노력'이라는 것을 견디지 못해 거의 미쳐 있었던 것 같기도 하다), 우리는 서로의 손목에 같은 모양의 시계를 채워주었다. 좌판에서 산 싸구려 시계였으나 전혀 문제 될 것이 없었다. 나는 그 시계를 통해 아주 잠깐 나른한 착각 속을 헤매고 다녔던 것으로 기억한다. 환란과 불안과 질투와 의심과 다정함과 기약없는 기약, 허튼 맹세들이 섞인 그 시간 속을 나는 맹렬한 속도로 질주했다. 시계 속의 시간과 우리의 현재가 점점 틀어지고 있었음은 아주 나중에야 알았다. 너와의 관계가 진정으로 끝장 났다고 여긴 순간, 정말 거짓말처럼 시계는 멈춰 있었다. 아니, 내가 자각하지 못했을 뿐, 시계는 이미 오래 전 죽어 있었을 것이었다.
또, 곱기 이를 데 없던 너를 마음에 두었던 한 시절도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쳐버린 그 시간 속의 너에게 나는 오래도록 지니고 있던 시계를 채워주었다. 너를 욕심냈던 내 마음이 참으로 가당치 않음을 알면서도 이성보다 앞섰던 그 마음은 그저 외로움 때문이었을까. 아직도 잘 모르겠고, 앞으로도 잘 모를 것이며, 그런 것들이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만을 겨우 알게 되었으면서도 나는 여지껏 그 새벽의 네게 용서를 빌고 싶은 마음에 어쩔 줄을 모른다. 그 시계는 돌고 돌아 다시 내게 돌아왔고 종내 아주 잃어버리고 말았다. 잃어버리고, 치워버리고, 부숴버린 시간. 어쩌면 내 의지였을지도 모르고, 어쩌면 내 의지와는 전혀 무관하게 흘러가버린 것일지도 모르는. 그 시간 속에서 미라처럼 바짝바짝 말라가는 너. 썩어 없어지지도, 그렇다고 본연의 그대로도 아닌 너.
일을 하다가 짬이 나는대로 시집을 펼쳤다. '핏덩어리 시계'를 외울만큼 반복해서 읽었다. 그리고 시계를 선물 받았다. 오늘은 아무래도 시계의 날인가보다.

고마워요.


덧글
다락 2008/05/09 01:11 # 답글
나이를 거꾸로 먹나. 본래 김혜순 시인의 시를 좋아했지만 날로 더 좋아지는 중이다. 시인의 착란 속 집요함이 좋다. 매혹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