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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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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14/anormal

In the fog




관계를 맺는 행위는 집을 짓는 행위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명당보다는 누군가 살다간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폐허에 더 매혹을 느끼는 편이다. 살림살이들이 마당 가 켠에 반쯤 묻혀 있다가 점점 풍화되어가는 곳. 들고양이들이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이 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꼭 그때까지만 잠시 머무르다 가는 곳. 담장이 다 무너져 있어 어느 곳으로 들어가나 상관이 없는, 까닭에 제 할 일을 빼앗겨버린 대문이 삭아가다 종내 허물어진 제 몸뚱이를 담 위에 포개어버리는 그런 곳. 구들장에는 명아주나 개망초같은 흔하디 흔한 잡풀들이 몸을 불리는, 간혹 운이 좋으면 깨진 액자사이로 희미한 형체만 남은 가족사진을 볼 수도 있는(대개 손주의 돌사진, 큰 아들의 대학졸업사진, 알토란 같은 자신의 비속들과 비슷비슷하게 생긴 혈족들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집주인의 환갑사진같은 것들), 그런 곳. 사라짐과 돋아남이 소란스럽지 않게, 고즉넉히, 그러나 부단히 서로를 주거니받거니 하는. 그런 곳을 발견하게 되면 나는 그곳에 다시 움막같은 집을 짓고, 살림을 부리고, 밥을 짓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사진을 찍어 안방에 주렁주렁 걸어놓으며 그렇게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마음을 건강한 생에 대한 열망이라고, 다복함에 대한 욕망이라고, 부단히 땀을 흘리며 살아보고 싶은 희망이라 떳떳하게 말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쩐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그것은 앞에 열거했던 희망이나, 다복함이나, 건강함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허기에서 비롯되는 숟가락질 같은 것. 네 죽음에 내 목숨을 기생하고자 하는 극악스러움. 그것은 다시 말해 탐욕. 네 죽음을 다져서 집을 짓고 지붕을 올리고 그 안에서 한껏 살아보고자 하는, 일그러지고 일그러진.

다른 사람들은 집을 짓고자 할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할까. 튼튼한 기둥과, 디딤돌, 잘 다져진 땅과, 남쪽을 향해 시원스레 낼 창문과 다정한 담 같은 것들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왜 기둥도, 그 기둥을 받칠 디딤돌도, 그 디딤돌이 견고하게 묻혀있을 땅과 따사로운 햇볓이 풍요로울 창 같은 것이 아닌 지붕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 허공에 붕 뜬 채로 밤짐승처럼 우우우, 낮은 울음이나 내뱉는 그런, 언제고 폭삭 주저앉고 말 그런, 불안 불안, 위태롭기 그지 없는 그런 것들에게서 '지속'을 믿게 되는 것일까.

제 버릇 뭣에게도 못 준다고, 이 마음 아무래도 평생 못 버린 채 살 것 같은 예감. 한 번 크게 당해보면 돼! 그러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된 마음을 갖게 되겠지, 했던 호기로움. 그런데 그 거 틀린 말이라는 거 이제 깨닫는다. 한 번 크게 당하면, 더 센 것을 찾게 되는 것이다. 더, 더, 세고 강한 것! 더 센 불안, 더 복잡한 미로, 더 어려운 수수께끼. 끝내, 내가 풀 수 없고, 이길 수도, 짐작할 수도 없어야 하는.









by 다락 | 2008/07/15 00:44 | 기록 | 트랙백 | 덧글(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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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다락 at 2008/07/15 02:55
레닌그라드의 자정, 멸종된 짐승들의 공동묘지, 인터내셔날 유랑극단, 당신의 아뜰리에, 아포리즘적 연애방식. 이 모든 것의 빨판, 내 사랑 S!

저항, 저항, 저항. 폈다 접었다를 반복하는 백기. 숨이 막힐 것 같다. 바람이라도 좀 불어주었으면!
Commented by 다흠 at 2008/07/25 03:20
며칠 뒤, 그러저러한 얼굴들이 모여 간혹, 수줍은 표정으로 수다를 떨것임을 알면서도, 그 남아 있는 시간이 그립게 나를 괴롭히는 구나. 너희와의 공적인 수다가 그토록이나 나의 시간속에서 예사롭지 않게 틈입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본다. 그게 참, 즐겁구나.

사실 한 보름 동안을 어떤 한 문장도 쓰질 못한 채 지쳐있었더랬다. 쳐다보기가 싫었다. 무엇때문에 그렇게 전전긍긍했었는지 까닭을 알 수가 없었지만 내버려뒀다. 어차피 분분한 해찰이 필요할 거라고 내심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술을 먹기도 했거니와, 혼자 술을 먹어도 적의가 생기지 않음을 기특해하기도 했고, 때론 공허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책을 보았다. 책은, 늘 어떤 길을 터주기보다는 가로막고, 가둘 뿐이란 걸 알 때 쯤 주저없이 책을 놓았다. 건방지고 까닭없음에 대한 반성쯤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걸 대체로 수긍하면서. 물론 책을 그런식으로 읽는 다는 것 또한 한 때겠지만서도 자꾸만 억울해지는 심사는 참 못되고 난처하기만하다 지금 내게는.

비가 참, 많이도 내리는 구나. 자꾸만 흐리고 빗소리가 메우는 풍경이 점점 거슬린다. 자연 현상만큼 인간의 성정을 잘 표현한 알레고리는 없겠지만서도, 별 탐탁치 않지만 쓸데없이, 벼가 쓰러진 논 한 가운데 농부의 멀뚱한 표정이 떠오르기도 한다. 어떤 지배력의 문제에 봉착한 인간의 어쩔수 없음이랄까. 우습지만 뭐 나름 이런 생각도 해본다 요즘 나는.

집을 지을 때, 나의 욕망 때문에, 관계의 덧없음 때문에, 나는 이내 집짓기를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먼저 떠오르는 건, 아직 내가 어른이 아니라는 증거일까. 무엇인가 견고하고 부림없음이 구질구질한 것만 같아, 올곧고 바른 것이 왜 그렇게 내곁에서 닳아져만 가는지 참 철없고 못나만 가는 것 같아 씁쓸하기만 하다.
Commented by 다락 at 2008/07/27 22:57
우리의 수다를 즐기기 위해서 나는 술을 좀 자제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ㅡ,.ㅡ 제 버릇 뭐 못 준다고 했어도, 내가 또 막무가내로 내달릴라치면 네가 좀 말려라. 말리란다고 말릴 네가 아니라는 걸 알면서도 난 또 이러고 있다. ㅋ

예전엔 비가 올지, 그칠지 좀 가늠이 됐던 것 같은데, 요새는 늘상 낭패다. 예전엔 좀 그랬는데 하는 이 마음이 예전에 진짜 그래서 그런건지, 예전이라면 덮어놓고 좀 뽀샤시해지는 기억 탓인지는 모르겠다만 아무튼 그렇다. 자연 현상만큼 인간의 성정을 잘 표현한 알레고리가 없다는 너의 말에 일정 정도 동의하면서도, 그러한 생각은 좀 오만이 아닐까 싶은 생각도 든다. 나처럼 계절이나 날씨에 한껏 휘둘리는 아해에게는 특히나 더더욱.

MAGNUM 사진전에 다녀왔다. 주말이여서 더더욱 그랬겠지만, 거의 인산인해 수준이었다. 뭘 보자고 이렇게 줄서서 기다리고 있는 것일까. 입장도 전에 피로해져서는 동행자에게 심통을 부렸다. 사진들은 단조로웠고 좀 지루했다. 드물게 괜찮은 사진들이 있기는 했지만 썩 신통치는 않았다. 뭘 기대한거냐? 대강대강 사진들을 훑으면서 그래도, 마음에 드는 사진작가의 이름에 표시를 해두기는 했다. 그러면서 울 다흠 사진이 훨씬 좋구만, 했더랬다.

모르겠다. 뭘 기대한 건지. 사진전의 이름이 매그넘 코리아전이었으니, 모든 사진의 주제가 이 나라에 맞춰져 있는 것은 당연한 일. 한국 사람들의 사랑과 결혼과 입신양명, 한국의 낮은 둔덕들과, 조가비처럼 다닥다닥 바다위에 붙어있는 섬들. 내가 이곳에 살아서 이곳의 이야기들에 무감한 것일까. 아니면, 이 세계가 그토록 단조롭고 지루한 것일까. 폐허 속에서 카메라 뷰파인더를 망연히 바라보고 있는 아이의 눈망울처럼 시선을 뗄 수 없는 풍경을 찍어낼 수 없는 이 안온한 세계를 살아가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이방인인 사진작가들이 눈 씻고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극명한 폐허 속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 아닐까. 그런데, 정말 그런가? 이 세계의 단조로움과 지루함은 지극히 평화롭기 때문에 그러한가? 그림자처럼 우리의 발치에서 떨어질 줄 모르는 이 생의 공포와 고통은 무엇인가? 그것들은 잠시 어디에 몸을 숨겼나?

올곧고 바른 것이 무엇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촌놈의 근성만은 끝내 네게서 떠나지 못할테니 좀 안심해도 되지 않을까. 그 근성이 간혹 너를 이렇게도 저렇게도 못하게 하는 걸림돌이 되기도 할테지만, 나는 그 근성이 너를 지키는 버팀목이라는 믿음을 버리지 않는다. 아직 가을의 기미는 멀었지만, 이 여름도 끝이 있을 것이다. 이 여름이 끝나는 것에 나는 다른 때보다 훨씬 겁을 내고 있지만, 그래도 이 계절의 끝에 쯤엔, 무언가 좀 명확해질지도 모를 일이다. 미뤄두고, 미뤄두었던 일들을 더 이상 미뤄둘 수 없을 때.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몸을 일으켜야 할테니. <The Road> 재미있게 보고 있는 중이다. 화요일에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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