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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n the fog 관계를 맺는 행위는 집을 짓는 행위와 흡사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명당보다는 누군가 살다간 흔적이 희미하게 남아 있는 폐허에 더 매혹을 느끼는 편이다. 살림살이들이 마당 가 켠에 반쯤 묻혀 있다가 점점 풍화되어가는 곳. 들고양이들이 새끼를 낳고, 그 새끼들이 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을 때까지만, 꼭 그때까지만 잠시 머무르다 가는 곳. 담장이 다 무너져 있어 어느 곳으로 들어가나 상관이 없는, 까닭에 제 할 일을 빼앗겨버린 대문이 삭아가다 종내 허물어진 제 몸뚱이를 담 위에 포개어버리는 그런 곳. 구들장에는 명아주나 개망초같은 흔하디 흔한 잡풀들이 몸을 불리는, 간혹 운이 좋으면 깨진 액자사이로 희미한 형체만 남은 가족사진을 볼 수도 있는(대개 손주의 돌사진, 큰 아들의 대학졸업사진, 알토란 같은 자신의 비속들과 비슷비슷하게 생긴 혈족들을 배경으로 환하게 웃고 있는 집주인의 환갑사진같은 것들), 그런 곳. 사라짐과 돋아남이 소란스럽지 않게, 고즉넉히, 그러나 부단히 서로를 주거니받거니 하는. 그런 곳을 발견하게 되면 나는 그곳에 다시 움막같은 집을 짓고, 살림을 부리고, 밥을 짓고, 아이를 낳아 기르고, 사진을 찍어 안방에 주렁주렁 걸어놓으며 그렇게 살고 싶어지는 것이다. 그 마음을 건강한 생에 대한 열망이라고, 다복함에 대한 욕망이라고, 부단히 땀을 흘리며 살아보고 싶은 희망이라 떳떳하게 말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어쩐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의 그것은 앞에 열거했던 희망이나, 다복함이나, 건강함과는 좀 거리가 있는 것 같다. 그것은 허기에서 비롯되는 숟가락질 같은 것. 네 죽음에 내 목숨을 기생하고자 하는 극악스러움. 그것은 다시 말해 탐욕. 네 죽음을 다져서 집을 짓고 지붕을 올리고 그 안에서 한껏 살아보고자 하는, 일그러지고 일그러진. 다른 사람들은 집을 짓고자 할 때 무엇을 먼저 생각할까. 튼튼한 기둥과, 디딤돌, 잘 다져진 땅과, 남쪽을 향해 시원스레 낼 창문과 다정한 담 같은 것들이 아닐까. 그런데 나는 왜 기둥도, 그 기둥을 받칠 디딤돌도, 그 디딤돌이 견고하게 묻혀있을 땅과 따사로운 햇볓이 풍요로울 창 같은 것이 아닌 지붕을 제일 먼저 떠올리게 되는 것일까. 허공에 붕 뜬 채로 밤짐승처럼 우우우, 낮은 울음이나 내뱉는 그런, 언제고 폭삭 주저앉고 말 그런, 불안 불안, 위태롭기 그지 없는 그런 것들에게서 '지속'을 믿게 되는 것일까. 제 버릇 뭣에게도 못 준다고, 이 마음 아무래도 평생 못 버린 채 살 것 같은 예감. 한 번 크게 당해보면 돼! 그러면 정신 똑바로 차리고 제대로 된 마음을 갖게 되겠지, 했던 호기로움. 그런데 그 거 틀린 말이라는 거 이제 깨닫는다. 한 번 크게 당하면, 더 센 것을 찾게 되는 것이다. 더, 더, 세고 강한 것! 더 센 불안, 더 복잡한 미로, 더 어려운 수수께끼. 끝내, 내가 풀 수 없고, 이길 수도, 짐작할 수도 없어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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